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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어디서 잠을 잘까

 

 

글 도연스님   

 

 

 

 

새집2_도연스님.jpg

 

요 며칠 창문에 매단 먹이통에 노랑턱멧새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먹이통에 몰려오는 딱새, 곤줄박이, 박새, 쇠박새, 동고비와는 달리

 

야생성이 강해 멀찌감치 놓여있는 먹이에만 드나들던 녀석이었는데

 

부침부침 다가오는 것은 그 동안 낯을 익힌 까닭일 것이다.

 

 

 

하루 종일 소란스럽던 새들이 해만 지면 약속이나 한 듯 잠자리를 찾아

 

숲으로 들어가는데 도대체 새들은 어디서 자는지 여간 궁금한 일이 아니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참새들이 초가지붕 속이나 우거진 향나무 속에서 잠을

 

자다가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곤 했다. 하지만 곤줄박이나 박새 같은 녀석들은

 

어디서 자다가 아침이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골짜기 위쪽 오동나무 군락지에 딱따구리가 뚫어놓은 수십 개의 구멍이

 

있긴 하지만 산에 사는 나로서도 감히 한밤중에 손전등을 들고 올라가

 

확인하기가 망설여지는 거리이다.

 

 

 

딱새 한 마리는 연장을 넣어두는 컨테이너 창고 환기구로 들어와 작업대

 

위에 놓여있는 두루마리 화장지 위에서 잠을 자고 나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어느 날 밤에 번식을 마친 빈 둥지를 무심코 툭 건드렸을 때 새 한 마리가

 

놀라 달아나는 걸 보고 추운 겨울이면 새들이 빈 둥지에서도 잠을 잔다는 것도

 

알았다.

 

 

 

오늘은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여서 미장일을 하며 샘터에 고인 물을

 

조금씩 퍼올려 썼다. 수도꼭지를 완전히 개방하여 퍼올리면 고인 샘물이 금방

 

마르기 때문에 물탱크에 쫄쫄 떨어지게 해놓고 나갔다가 돌아와 손전등을

 

들고 모터 전원을 차단하려는 순간, 느낌이라는 게 참 요상도 하지,

 

평소 생각지도 않은 둥지를 손전등으로 비쳐보니 곤이(곤줄박이)가 둥지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어쭈, 대체 저 녀석은 언제부터 저 곳을 잠자리로 정한 걸까. 아무튼,

 

앞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둥지에서 곤이는 내가 한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앞마당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빙빙 돌거나 아니면 오줌을 누러 나오는 걸

 

낱낱이 감상(?)하고 있었을 터이다.

 

이쯤이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바뀌어야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공둥지는 봄이 아닌 겨울에 매달아 주어야 한다.

 

새들은 인공둥지에서 추위도 피하고 내년 여름 번식기를 대비해 미리미리 둥지를

 

찜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 여름 번식한 둥지마다 청소를 해놓은 건

 

참 잘한 일이다. 내 겨우살이 준비만 할 게 아니라 새들의 겨울살이를 위한

 

둥지 만들기도 병행해야할 것이다.

 

오늘은 경주에서 온 김 거사께서 법당에 큼지막한 연탄난로를 놓아주고 내려갔다.

 

새들이 인공둥지에서 번식하거나 추위를 피해 잠자는 걸 보면 겨우내 땔 연탄을

 

가득 들여놓은 것만큼이나 마음이 푸근하다.

 

 

 

그런데 곤이 녀석은 눈을 감고 자는지 뜨고 자는지 살살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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