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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5 10:25

아이들 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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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홀리기

 

 

 

글 홍정욱/공동대표   

 

제목이 아무래도 마뜩찮다. 느낌에 맞으려면 ‘홀리다’란 말보다는 좀 더 은밀해야하고, 덜 비릿해야 하는데 마땅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느낀 적이 있지만, 유난히 내게, 적어도 도시의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라는 상황에, 우연치고는 좀 지나치다 싶은 일이 자주 일어나 간혹은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눈을 껌뻑거리기만 하던 아이들의 표정을 ‘홀리다’라고만 읽은 것이다. 말을 물감처럼 섞어서 쓸 수 있다면 ‘홀리다’란 말에 희한하다, 안타깝다, 애태우다, 두렵다 등의 말을 조금씩 섞었으면 딱 좋겠다.

 

두어 달 사이 부산시 금정구 부곡동 4층에 있는 우리 교실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5월이 되자 교실 곳곳에서 큰 벌이 자주 들어온다고 교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간단한 대처방법을 알려 주고는 우리 반 아이들에겐 딴청을 피웠다.

 

“너희들 말벌 아나? 손가락만 한 놈. 내가 교실로 한 번 오라 해 볼까?”

 

점심 먹고 단체로 몽롱하던 놈들이 귀찮은 듯

 

“우웩! 자뻑이다. 오버하지 마세요. 벌이 샘 말을 어떻게 들어요?”

 

“내가 하면 우짤래? 내기 할까?”

 

이때 한 놈, 나직하게 묻는다. 그 놈은 3학년 때 우리 교실에서 “택시를 타고 간 직박구리”를 만진 놈이다.

 

“진짜 부를 수 있어요?”

 

“내가 불러서 오면 니가 먼저 만지도록 해 주께. 쏴도 나는 모른다.”

 

어찌어찌 진짜로 건 것 없는 내기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아이들이 벌을 불러 보라 난리다.

 

“기다려라. 아직 내 맘이 안 내킨다.”

 

“저라다가 안 오모 쪽팔리서 우짤라꼬 저라지?”

 

아! 그런데 3교시 국어시간.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만한 말벌 한 마리가 거짓말처럼 교실로 날아들었다.

 

“우와! 진짜 왔다. 샘, 말벌 왔어요!”

 

“가만 놔둬라. 니들 공부 잘 하나 둘러보고 가라했다. 가까이서 보고 싶은 놈 있나? 머리에 앉아봐라 할게”

 

“헐~. 샘이 잡아 보세요. 관찰하게요.”

 

“잘 노는 놈을 왜 잡냐? 보면 되었지 뭘 더 관찰해?”

 

“그런데 진짜로 샘이 오라고 했어요?”

 

“니 머리에 앉아라 해 볼까?”

 

벌은 교실을 두어 바퀴 돌더니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왱왱거리고 있었다.

 

“진짜 보기만 하고 살려 줄 수 있나? 죽이면 안 된다.” “예”

 

“좋다. 반장은 과학실에 가서 비이커와 철망덮개를 하나 갖고 오너라.”

 

“어떻게 잡아요?”

 

“쏘이면 죽을 수도 있는데 잡기는? 지 보고 들어가라 해야지!”

 

“헐~”

 

“어디가 헐었냐? 말만 하면 헐이냐? 너그는.”

 

비이커를 들고 창가로 가며 종이! 하니 한 놈이 주춤거리면서 벌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공손히 종이를 올린다. 슬쩍 웃어준다.

 

창을 뚫을 듯 머리를 박고 있는 놈을 비이커로 덮고 창과 비이커 사이에 종이를 넣어 상황 끝. 투명한 비이커 안에서 왱왱거리는 벌을 보고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쏘이면 죽는 수가 있다. 조심해라! 만지지 말고 한 명씩 보기만 해라. 내가 벌한테 아이들이 보기만 하고 해치지 않을 거라 하긴 했는데 이놈도 성질이 있어 우짤지는 나도 모른다.”

 

종이를 철망 덮개로 바꾸고 뒤쪽 사물함 위에 올려 두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내내 아이들로 둘러져 있었다. 방과 후엔 다른 반 아이들도 왔다.

 

“진짜로 샘이 불렀어요?”

 

“와? 너그 교실에도 한 마리 보내주까? 너그 샘 기절 할낀데?”

 

뒷날 아침, 움직임이 많이 약해진 녀석을 창밖으로 보냈다. “산에 가서 살아라!”고 했다. 반쯤의 아이들이 홀린 듯 갸웃갸웃.

 

며칠 전 전담시간, 두 시간이나 교실을 비켜 줘야 해서 운동장을 한 바퀴 실실 걷기로 했다. 지난해 곶감 깎을 감을 땄던 감나무 아래로 가자 직박구리 어미가 머리 위로 낮게 날며 날카로운 소리로 위협했다. ‘옳거니! 틀림없다.’

 

감나무 가지 사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막 둥지를 나선 직박구리 새끼 다섯 마리가 한 줄로 쪼롬히 앉아 입을 쩍쩍 벌리고 있었다. 아마 둥지나기 훈련 중인가 보다. 어미는 덜 익은 굴거리나무 열매와 날개가 달린 벌레를 물고 와서 차례로 새끼를 먹이고 있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그림. 마침 운동장 구석 버즘나무 그늘에 옆 반 샘이 아이들을 몰고 왔다. 아이들이 흩어져 멀리뛰기 연습을 시작하자 다가가서 선생님을 다짜고짜 끌고 왔다.

 

“우와! 우리학교에서 이런 일이 정말 있네요? 어떻게 이걸 찾았어요? 샘은 천상 시골학교로 가야겠다. 아! 저 새끼들 입 좀 봐! 이쁘다.”

 

“찾긴 뭘 찾아요. 새가 불러서 와보니 이렇네요. 시골이야 뭐 달마다 가긴 가는데. 꿍얼꿍얼…….”

 

 또 며칠 전에는 5학년 몇이 직박구리 새끼 한 마리를 들고 뛰어 왔다. 운동장에서 뭔가 살아 있는 것들이 보이면 들고 찾아오는 놈들이 더러 있다. 매미, 잠자리, 지렁이, 땅강아지 등이 여러 차례 아이들 손에 잡혀 왔었다.

 

아이들은 축구를 하다가 화단 구석에서 까마귀가 뛰어다니고 있어 가보니 직박구리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해서 까마귀를 쫓고 들고 온 것이라 했다. 살펴보니 오른쪽 날개가 많이 상해 있었다. 뼈가 꺾여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 아이들은 살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어린데 너무 많이 다쳤다.”고 어둡게 말하고 말았다. 들고 온 두 놈은 자기들끼리 눈을 마주 보았다. 새를 쥐고 보건실에 가서 소독을 부탁했다. 보건선생님은 깜짝 놀랐지만 다친 곳곳을 소독해 주셨다.

 

새를 들고 학교 뒤편에 있는 대밭으로 가 새끼를 내려 두었다. 찍찍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힘 내거라’ 고 돌아서려는데 아! 거짓말처럼 어미새로 보이는 두 마리가 나타났다. 운동장에서 4층의 우리 교실로, 그리고 1층의 보건실에서 대밭으로 오는 건물 안 복도 길을 어미가 어찌 알고 따라 왔냐고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분명히 왔다. 한 마리는 날개를 다쳐 비척거리기만 하는 새끼 옆에 내려앉았고, 다른 한 마리는 대나무 위에서 경계음을 내기 시작했다. 새끼 옆에 내려앉은 새는 새끼를 보다가 나를 보다가 했다. 뒤를 따른 몇 아이들은 홀린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다물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가보니 어미도 새끼도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풍뎅이 이야기, 며칠 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맞다. 그러니까 낙동강 항공촬영경비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을 하는 날, 아이들을 보내고 이곳저곳에 술 먹으러 오라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한참 전화질을 하고 있는데 교실 뒤쪽, 아이들 작품 붙이는 곳에서 뭐가 윙~하는 소리가 나더니 반짝반짝하는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청동풍뎅이.

 

오케이! ‘아무래도 밤에 일!을 열심히 하면, 그러면 내일은 머리가 띵할 것이고, 머리가 띵하면 산에 가야 하는데 너무 더울 것이고, 전담이 세 시간이니 세 시간만 하면 되고……. 한 시간은 보고, 한 시간은 그리고…. 흐흐.’ 퍼뜩 창문을 닫고 교실을 나섰다.

 

그리고 뒷날, 예상대로 된 아침부터 구세주 삼아 풍뎅이를 찾았다. 그런데 없었다. 아이들이 뭐 찾느냐고 물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니들, 풍뎅이 냄새 안 나나?”

 

“예? 풍뎅이 냄새요?”

 

“그래 임마! 노리짱하고 쌉씨름하고 매콤하고 그런 거! 내 코에서는 분명히 나는데”

 

“예?”

 

“너그는 그런 것도 모르고 우째 사냐? 분명히 풍뎅이 냄새가 나는데.”

 

“…….”

 

국어시간에 풍뎅이 이야기만 했다. 냄새로 말을 한다고 하니 믿는 둥 마는 둥! 아이고 머리야. 아이들이 집에 가고 난 뒤에 교실 곳곳을 뒤져도 어제의 풍뎅이는 없었다. 청동색 등짝이 예뻤는데.

 

그리고 주말 지나고 월요일. 일찍 집을 나섰다. 더워서 쉬엄쉬엄 걸을 참이었다. 서동고개를 넘어 학교 가까이 왔을 때는 얼굴에 땀이 흘렀다.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데 발 앞에서 뭐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아!

 

장수풍뎅이 수컷!

 

세상에!

 

이 도시에, 이 아침 시간에! 장수풍뎅이라니!!!

 

산에서 날아 왔는지, 아이들이 키우던 것이 날아 왔는지,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놈이 장수풍뎅이고, 살아서 내 눈앞에 있다는 것!

 

잡아 쥐니 녀석이 바둥댔다. 급한대로 길바닥에 버려진 과자 봉지에 넣고 주변에서 자두 뭉개진 것을 주워 함께 넣었다.  가슴이 막 뛰었다. 그리고 퍼뜩 엊그제 교실에 든 풍뎅이를 찾지 못한 일이 떠올랐다. 아하!

 

학교에 오니 7시 반. 여유 있게 작전을 짰다. 일전에 뒤적이다만 교실 뒷구석에 빈 화분을 가져다 두고 화분받침을 덮개 삼고, 그 안에 녀석을 넣어 두었다. 잠시 후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 녀석이 자두 한 알을 내민다. 헐~ 하필 자두.

 

 “아무래도 풍뎅이 냄새가 나는데. 분명히 나는데.”

 

 

장수청동풍뎅이_100730통영미륵도_천성광.jpg

 

 

쉬는 시간을 기다려 또 코를 벌름거렸다.

 

“샘, 개코예요?”

 

“아냐, 분명히 냄새가 나!”

 

“어떻게 풍뎅이 냄새를 알아요?”

 

“비슷한 물방개를 많이 구워 먹어봐서 잘 알아”

 

“헐~ 또! 물방개도 먹어 봤어요?”

 

“분명히 냄새가 난다. 내가 천천히 다시 찾아보마.”

 

두 시간 동안 틈날 때마다 교실 구석구석을 코를 킁킁대며 다녔다. 아이들은 저 양반이 또 왜 저러나 하는 눈치. 셋째시간. 수학. ‘익힘책 문제를 풀어라’하고는 또 킁킁댔다. 썩 괜찮은 연기!

 

때가 되었다. 더 두었다간 녀석이 어찌될지 모른다.

 

“봐라! 여기! 그럼 그렇지! 냄새가 나더라니까”

 

숨겨 둔 장수풍뎅이를 쑥 들어 올렸다.

 

“우와 진짜다! 장수풍뎅이다! 샘이 장수풍뎅이를 찾았다!(분명히 찾았다고 말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장마당이 되었다. 등딱지를 만지는 놈, 냄새를 맡겠다고 코를 들이미는 놈, 내가 밀려 나자빠질 판이었다. 겨우 아이들을 앉히고 또 풍뎅이 이야기! 머리를 돌려 팽이처럼 돌게 했던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이 화단 시식부 샘(특별활동부서로 화단사랑부를 운영하는데 풀을 자주 먹어보라 하니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화단 식사부, 혹은 화단 시식부라 부른다) 답단다.

 

“샘, 진짜 풍뎅이 냄새 알아요?”

 

“와? 안 믿어지냐? 뱀도 한 마리 불러볼까 싶은데 4층이라 뱀이 힘들겠제?. 그래서 그건 참는다. 내가.”

 

“…….”

 

 

 

그 장수풍뎅이는 1주일간 우리교실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온 풍뎅이 사육통 안에 머물렀다. 짝을 구해주고 싶어 학교 전체에 중매를 서겠다고 해봤으나 짝을 구할 수 없었다. 아이들과 학교 뒷산에 가서 큰 졸참나무에 붙여 주었다. 나무에 기어오르는 녀석을 보고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 살아라. 꼭 장가가라!”고 외쳤다.

 

그리고 오늘,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깨자마자 그놈이 생각났다. ‘장마가 끝나고 나서 보낼 걸.’ 학교에 오자 아이들이 모여 같은 생각을 말했다. 다시 데리고 오자는 녀석도 있었지만 녀석을 믿어주자 했다. 아이들은 홀린 듯 그 벌레를 믿자는 내 말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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