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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자연 습지인 낙동강하구의 새들이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낙동강하구를 넘어 우리 삶의 토대인 자연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새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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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

 

가장 우아하고 고상하며 품격있는 이미지의 새 하나를 꼽으라면 어떤 새가 떠오르는가? 어릴 적부터 동화책이나 그림, 음악 등을 통해 친숙하게 알아온 새 하나가 아른거리지 않으시는가?

필자의 설명이 형편없지 않았다면 '순수'의 이미지를 가진, 온몸이 하얀, 백조라는 한자어로 더 친숙한 이 새를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말로는 '고니'라 부르는 이 새는 시베리아 툰드라나 몽골의 초원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지에서 월동하는 대표적인 겨울철새다.

 

고니는 백조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새까만 흑조를 포함해 전 세계에 6종이 있다. 큰고니와 고니, 혹고니 3종이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혹고니와 고니는 그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으니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대부분은 큰고니라고 보면 된다.

                            부산에 '백조의 호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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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하구 큰고니

 

큰고니는 이름처럼 큰 새다. 날 수 있는 새 중에서 가장 무거운 축에 속한다. 아시다시피 새는 무거우면 안 된다. 무거운 몸은 비행에 치명적 장애다. 그래서 새는 가볍다. 뼈도 속을 비웠고 심지어 오줌도 누지 않는다. 오줌으로 버릴 물까지 싣는다면 비행에 불리하므로...

 

숲에서 가장 흔한 참새와 비슷한 크기의 박새 한 마리가 달걀의 3분의 1 정도인 평균 17~18그램(g)이다. 그에 비해 큰고니의 몸무게는 5.7~12.5킬로그램(kg). 날개를 뻗은 길이가 보통의 성인 남자 발끝에서 머리 위로 뻗은 팔보다도 긴 2.2미터(m)에서 2.4미터에 이르니 이 새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큰 새가 이 세상에 마음놓고 살 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연히 멸종위기종이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적색목록(RED DATA)에 멸종위기관심종(LC)으로 등재돼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위기 II급에 천연기념물 201호로 지정돼 있다.

전 세계에서 이 새를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도시가 어디일까? 놀라지 마시라. 바로 우리나라의 부산이다. '백조의 호수'가 다른 먼나라나 동화책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 곁에 있다는 게 믿어지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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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낙동강하구는 그런 곳이다. 정부와 부산시의 천대(?)로 일반인들에게는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의 상징쯤으로 여겨지지만, 이곳은 일찍이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 '신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 불리던 곳이다.

 

그래서 환경과 철새를 전혀 모르던 1960년대 철새도래지로 천연기념물(제179호, 1966년 문화체육부)로 지정됐고 지금도 문화재보호구역과 습지보호지역 등 자그마치 5개 법으로 정부가 중복 지정해 보호하는 한국 최고의 습지다. 썩어도 준치라고,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습지이며 이를 입증하는 것이 이곳을 찾는 3천 마리의 큰고니다.

날 수 있는 새 중 가장 크고 무거운 축에 속하고 한 마리 한 마리가 문화재로 등록된 큰고니 3천마리가 살아가려면 그 땅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넓이는 얼마나 돼야 할까? 밥은? 큰고니는 풀을 먹고 산다. 3천마리가 하루에 먹는 풀의 양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3천 마리 큰고니를 지켜야 하는 이유

이들은 겨울철새다. 태어나 자란 툰드라와 몽골 초원은 벌써 얼음이 얼기 시작해 내년 5월 초가 돼야 녹는다. 그러니 10월이면 큰고니는 모습을 드러내고 늦게는 이듬해 4월까지 자그마치 1년의 절반을 우리나라에서 머문다. 3천 마리 큰고니가 겨울철 5~6개월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 만큼의 풀은 얼마나 돼야 할까? 또 이 엄청난 풀이 자라려면 그 양분은 또 얼마나 있어야 할까?

5천만 명이 넘는 우리가 버린 똥오줌과 음식 찌꺼기는 모두 어디로 가는가? 왜 낙동강은 '낙똥강'이 됐는지 어렵지 않게 그 까닭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장구치고 놀던 맑은 물을 자랑하던 삼천리 금수강산이 여름이면 녹조가 창궐하는 누런 '똥강'이 돼 끊임없이 바다로 흘러 가는데도, 어떻게 강과 바다는 아직도 살아있어 우리 삶을 지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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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섬매자기가 자란 낙동강하구 여름갯벌

 

낙동강하구의 여름갯벌에는 끝없는 녹색 벌판이 펼쳐진다. 상류서 공급되는 영양물질을 받아 습지식물 새섬매자기는 몸을 키운다. 논의 벼처럼 자란 새섬매자기는 낙동강하구를 찾는 큰고니의 먹이가 되어 춥고 모진 겨울을 견디게 한다.

강으로 흘러들어가 풀의 몸으로 바뀐 우리가 버린 온갖 찌꺼기들의 잔해를 이렇게 큰고니가 치워주기에, 아직 강과 바다가 살아있고 거기에 기대어 우리 또한 삶을 영위한다. 낙동강하구를 찾아오는 3천 마리 큰고니는 우리 생존의 토대,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주말인 지난 13일, 낙동강하구의 삼락생태공원에 때 이른 큰고니 4마리가 나타났다. 곧이어 멸종된 '공룡 두 마리'가 나타나 큰고니에게 "내 짝이 나서는 안 된다! 우리도 살고 싶다며 멸종위기에 저항하라" 당부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이들을 에워싸고 "우리도 살고 싶다"를 함께 외쳤다. 이곳을 관통하는 부산시의 대저대교 건설계획으로 큰고니의 핵심 서식지가 다시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기후위기비상행동 부산회원들이 이곳에서 멸종저항 활동을 펼친 것이다.

3천 마리가 찾아오던 큰고니의 수는 3년 전부터 절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1200마리로 또 줄었다. 더는 이 땅에서 새들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며, 새들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사람과 새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동래학춤 무형문화재 전수자 박소산 선생의 학춤이 이어졌다.

이 땅의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참가자들의 바람이 훨훨 하늘을 날아 사방으로 퍼져갔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는 결국 자연파괴 때문에 왔다. 난개발이 계속되면 큰고니도 우리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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