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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새들이 돌아왔습니다

 

 

도연스님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에는 겨울이면 유난히 까마귀가 많았습니다. 나는 들판을 새까맣게 뒤덮은 <까마귀>들을 쫓아다니며 놀았습니다. 까마귀들은 내가 어린애라는 걸 아는 듯 잡힐 듯 말 듯 멀리 달아나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수많은 까마귀 중에서 한 녀석쯤은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 녀석도 잡혀주지 않았습니다.

 

월동을 위해 철원평야에 가장 먼저 도착한 녀석은 <쇠기러기>입니다. 어린 나에게 기러기는 신비로운 새였습니다. 하늘 높이 줄을 서서 어디론가 날아갈 뿐 들판에 내려앉는 걸 본 적이 없었습니다. 기러기는 멀리 가기 위해 줄을 선다는 사실을 안 것도 훨씬 후의 일입니다.

 

 

쇠기러기떼_121101철원_도연스님.jpg

 

철원평야에 내려앉은 기러기들은 어릴 적 내가 동경하던, 꿈에도 그리던 바로 그 녀석들이었습니다. 수 천, 수 만 마리가 들판에 내려앉아 먹이를 먹을 때는 무질서하다가도 한 번 날아오르면 어김없이 아름답게 줄을 지어 비행합니다. 기러기 다음으로 반가운 녀석들은 학(鶴)이라고 부르는 <두루미>입니다. 철원평야에는 약 500여 마리의 두루미(북한에서는 흰두루미라고 부릅니다)와 2천여 마리의 <재두루미>가 월동하고 있으며 이따금 소수의 <검은목두루미>, <흑두루미>, <캐나다두루미>도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걷이가 끝난 휑하고 쓸쓸한 들판은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두루미 차지가 됩니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 여러분은 부산과 가까운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재두루미를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남저수지를 찾는 재두루미 숫자가 부쩍 늘어 100 마리 넘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먹이를 공급하고 새들이 안전하게 월동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진 결과입니다.

 

 

재두루미비행_111023철원.jpg

 

여러분이 쉽게 가볼 수 있는 낙동강 하구 을숙도, 명지지구 개펄에도 어김없이 수 천 마리의 <큰고니>와 <큰기러기>가 도래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 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곳에도 겨울새들이 도착했습니다. <콩새>와 <되새>, <멧새>, <쑥새>처럼 숲에 사는 녀석들도 오지만 <말똥가리>, <새매>, <참매> 같은 맹금류도 덩달아 왔습니다. 오늘 낮에는 말똥가리 두 마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날고 있었습니다. 말똥가리는 강아지도 채갈 만큼 무서운 녀석입니다. 머지않아 <독수리>도 겨울 하늘을 유유히 비행할 것입니다.

 

겨울새들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새들의 먹이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여기저기 알고 지내는 농부들에게 부탁해 볍씨와 싸래기를 가져다가 놓아주는데 겨우내 서너 가마니의 분량을 먹어치울 만큼 대식가들입니다. 그러나 텃새인 <곤줄박이>, <박새>, <쇠박새>, <동고비>, <참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어치>,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같은 녀석들은 기름기 있는 음식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잡식성인 이들은 동물성 먹이를 더 좋아합니다. 여름에는 당연히 곤충이나 애벌레를 먹지만 겨울에도 나무를 쪼아 깊숙이 숨은 벌레를 잡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쇠기름을 공급하거나 땅콩이나 잣, 해바라기씨를 준비했다가 내줍니다.

 

겨울에만 내려와서 월동하는 철새와 달리 텃새는 먹이 저축의 달인입니다. 그래서 먹이를 잘게 부수어 주지 않으면 한 시간도 안 돼 먹이가 동 납니다. 먹이가 부족한 엄동설한을 대비해 모두 물어다가 숲속 곳곳에 감추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박새류는 먹이를 저축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성질이 낙천적이어서 그럴까요?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 그만이라는 식입니다. 같은 숲에 살고 날개를 가진 짐승이라도 식성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다 다르다는 게 사람이나 새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낮에 보니까 스케이트장을 만들려고 물을 가두어놓은 논에도 오리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습니다. 번식기 때는 잘 안 보이던 녀석들이 겨울에는 약속이나 한 듯 수십 마리씩 모여 삽니다. 보는 눈이 많아야 천적의 접근을 빨리 알아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잎사귀가 무성할 때는 혼자서도 천적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만 잎이 모두 져버린 겨울에는 뭉쳐있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걸 새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겨울에만 새들이 모여서 이동한다고 생각하지만 번식기에도 새들은 무리지어 이동합니다. 여름철새들이 번식을 하러 남쪽에서 올라올 때에도 무리를 짓고 번식을 마치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갈 때도 무리를 지어 날아갑니다. 무리를 지으면 두려움도 줄어들고 용감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혼자서는 쭈뼛거리지만 두 사람 이상 모이면 시끌벅적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랍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수천 km를 날아온 새들을 배려하느라 곳곳에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철원평야, 한강하구, 천수만, 순천만, 우포, 주남저수지, 낙동강하구 을숙도 등등 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새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손길이 바빠졌습니다. 조금 안쓰러운 것은 요즘 을숙도 옆 명지지구입니다. 입주가 시작되면서 개펄 가까이 조성된 산책로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바람에 그 동안 편히 먹이활동을 하고 쉬던 새들이 방해를 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방파제를 넘어가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이 있지만 때로는 이를 어기고 들어가 새들을 놀라게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 여러분이 이런 사람들을 본다면 잘 알아듣게 얘기해주어야겠지요? 약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부끄러울 것입니다. 이번 달 안으로 나도 을숙도 고니들을 보러 갈 겁니다. 따뜻한 갈대숲에 앉아 옹알이 하듯 지저귀는 고니들을 바라볼 생각에 나는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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