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 일대기(4)
글 손종세/농민, 시인
흑염소 11 (염아지 1)
썩는 냄새나는 왼쪽 뒷다리
발굽 휘어져 저는 오른쪽 뒷다리
태어날 때 얼어
엄마 젖 찾는 길이 멀고도 멀어
열흘은 살았다
차라리 더 일찍 갔더라면
속이나 덜 썩지
태어날 때 다리 언 줄 알고
이미 포기한 것을
아린 것
곁에 더 머물고 싶어
아파
새끼 찾는 울음 운다
듣고나 있는지
흑염소 12 (염아지 2)
아픈 아지와 한 이불 덥고 잔다
제 엄마 옆보다 나은 자리일 꺼라 하고
깔렸냐
스스로 갔냐
눈 뜬 자리는 다르고
살아있냐
내 밥그릇에 짜서
우윳병에 넣은
네 어미젖도 소용없어
너는 갔고
나는 돌이킨다
내 탓
어미 젖 넉넉하여
그것으로 건강하라는
이불속에서 함께한 아픔으로 주는 양식
나약하지도 배고프지도 아프지도
주사 맞을 일도 없는
삶
스스로 또 여는 삶
플러스 알파였으면
흑염소 13 (살아남기)
어깨만 들어가면 통과 할 수 있어요
어릴 땐 자유롭게 넘나들던 길
울타리 막혀도
사는 동안 한 번 쯤
인간 아닌
다른 생명으로 살아 보았으면 하고
바램 아닌
꿈속처럼 두려운 세상을
열려고도 해 보았지만
문이 어딘지 몰라
묶여진 세상에 멍청타 엉뚱타는
말 들으며 사는 길
자꾸 돌아보아
어쩌면
울타리 없는
자유로운 길
그네 염소길
흑염소 14 ( 염아지 3. 콩탕콩탕 )
항아리 뚜껑 깰라 이 녀석아
난 스님도 돌중도 아니야
열 마리 쯤 모여
높이뛰기
이마받기
올라타기
꼬리치며 도망가기
엄마 젖 준다는 울음소리에 얼른 가
서른 번 쯤 쪽쪽 힘차게 빨고
십 초 만에
아침잠에서 막 깨어나 모여든
같잖은 놈들과도 함께
더 높이 뛰어본다
항아리 뚜껑 깰 수도 있을
높이만큼
도토리 키 재기 하고 있네
짜아슥들
그래도 귀여운 모습은
내 눈까알 머물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