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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1 21:05

흑염소 일대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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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염소 일대기(4)

 

 

글 손종세/농민, 시인   

 

 

 

흑염소 11 (염아지 1)

 

 

썩는 냄새나는 왼쪽 뒷다리

 

발굽 휘어져 저는 오른쪽 뒷다리

 

태어날 때 얼어

 

엄마 젖 찾는 길이 멀고도 멀어

 

 

 

열흘은 살았다

 

차라리 더 일찍 갔더라면

 

속이나 덜 썩지

 

태어날 때 다리 언 줄 알고

 

이미 포기한 것을

 

 

 

아린 것

 

곁에 더 머물고 싶어

 

아파

 

새끼 찾는 울음 운다

 

 

 

듣고나 있는지

 

 

 

흑염소 12 (염아지 2)

 

아픈 아지와 한 이불 덥고 잔다

 

제 엄마 옆보다 나은 자리일 꺼라 하고

 

 

 

깔렸냐

 

스스로 갔냐

 

눈 뜬 자리는 다르고

 

 

 

살아있냐

 

 

 

내 밥그릇에 짜서

 

우윳병에 넣은

 

네 어미젖도 소용없어

 

너는 갔고

 

나는 돌이킨다

 

 

 

내 탓

 

 

 

어미 젖 넉넉하여

 

그것으로 건강하라는

 

이불속에서 함께한 아픔으로 주는 양식

 

 

 

나약하지도 배고프지도 아프지도

 

주사 맞을 일도 없는

 

 

스스로 또 여는 삶

 

플러스 알파였으면

 

 

 

흑염소 13 (살아남기)

 

어깨만 들어가면 통과 할 수 있어요

 

어릴 땐 자유롭게 넘나들던 길

 

울타리 막혀도

 

사는 동안 한 번 쯤

 

인간 아닌

 

다른 생명으로 살아 보았으면 하고

 

바램 아닌

 

꿈속처럼 두려운 세상을

 

열려고도 해 보았지만

 

문이 어딘지 몰라

 

묶여진 세상에 멍청타 엉뚱타는

 

말 들으며 사는 길

 

자꾸 돌아보아

 

어쩌면

 

울타리 없는

 

자유로운 길

 

그네 염소길

 

 

 

흑염소 14 ( 염아지 3. 콩탕콩탕 )

 

항아리 뚜껑 깰라 이 녀석아

 

난 스님도 돌중도 아니야

 

 

 

열 마리 쯤 모여

 

높이뛰기

 

이마받기

 

올라타기

 

꼬리치며 도망가기

 

 

 

엄마 젖 준다는 울음소리에 얼른 가

 

서른 번 쯤 쪽쪽 힘차게 빨고

 

십 초 만에

 

 

 

아침잠에서 막 깨어나 모여든

 

같잖은 놈들과도 함께

 

더 높이 뛰어본다

 

항아리 뚜껑 깰 수도 있을

 

높이만큼

 

 

 

도토리 키 재기 하고 있네

 

짜아슥들

 

그래도 귀여운 모습은

 

내 눈까알 머물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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