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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5 10:06

염소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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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옥천사 인근에서 농사일과 목축일을 하며 자연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손종세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염소 길들이기

 

 

글 손종세/농민․시인   

 

손종세.jpg

 

흑염소를 기르면서 내 마음도 참 많이 아팠다. 병들어 죽어가는 새끼를 안고 밤을 새운 날도 있었다. 변비, 설사, 고창증(鼓脹症, 사료를 잘못 먹고 가스로 복부가 팽창해 소화 장애를 일으키는 질병), 감기, 기관지염, 폐렴, 결막염에 압사까지…. 장마철에 물을 피하고 추워도 그네들끼리 비비며 살도록 해 준 집이 이층 축사다.

 

녀석이 태어난 곳은 이층 축사의 마루다. 겨우 이 개월밖에 안 된 새끼 염소다. 엄마는 젖 주길 싫어하는데 사료 맛 짚 맛은 알아도 풀 맛은 아직 모른다. ‘땅 디뎌 보라고 연 문이 전쟁터’라는 말이 이 녀석에게도 딱 어울린다. 배불리 먹을, 초록의 생풀로 차려놓은 밥상을 무서워하다니. 생후 일 개월 된 새끼는 울고, 그 녀석 옆의 또 다른 녀석도 울고 또 울어서 모두 목이 쉬어버렸다.

 

봄이 지나고 더운 기운이 땀나게 하는 계절이 왔다. 따스한 봄날이 초여름으로 접어들 즈음, 풀들이 한 뼘 길이로 자라면 그들의 ‘목숨 쥔 사육자’는 아린 마음이 더해진다. “온 자리, 사는 자리, 갈 자리는 어디냐. 온 자리 미우냐. 사는 자리가 싫으냐. 갈 자리 두려우냐. 아냐. 알기나 하냐. 생각 한번 해 봤냐. 에이 무운디, 제기랄!” 나는 그네들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 약탕기에 넣을 수도 불고기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나는 염소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풀밭에 나가 배 실컷 채우라고 축사 문을 연다. 엄마 따라 나가야 할 새끼들이 나가지도 못하고 아우성이다. 강제로 축사 밖으로 쫓아낸다. 한 시간쯤 지난 후 닫혔던 문을 열고선 빨리 들어오라고 휘파람을 분다. 헤매는 새끼들을 쫓아가며 ‘길들이는 자’가 내뱉는 중얼거림. “죽을래? 죽는다이! 이 놈들아. 빨리 안 들어가나!” 3~4일 정도는 부대끼며 다툰다. 초기 몇 날에 길을 잘 들여야 하는 법이다.

 

사료와 짚 외엔 푸른 풀이 맛있는 먹이인 줄 모르는 녀석이 아직 있다. 축사 안에서 울던 녀석이 밖에서는 곱빼기로 울어대기도 한다. “지 배 안 채워주는 것도 아닌데, 좀 알아서 묵우몬 안 되나!” 잘 차려진 ‘풀 밥상’을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는 새끼도 있다. 잘 차려주었다 생각하며 지켜보는 꾼도 멍하다. 새끼가 어미 뒤를 잘 따르는지 내 눈길도 따라간다. 나는 아낌없이 염소에게 집과 밥상을 주고 싶은데 그게 내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게 내가 산골에서 염소들과 웃으며 다투는 모습이다. 그래도 내가 가축인 염소는 아니고 사람이라 참 다행이다.

 

염소들은 대체로 말을 참 잘 듣는다. 소리도 참 잘 기억하고 눈치껏 행동한다. 나가는 길 들어오는 길이 같다는 것도 안다. 울다가 배고파서 먹어본 파란 풀이 짚보다 맛있다는 것도 알아간다. 그러니 이제 울 필요도 없다. 네 다리가 튼튼하니 바위도 둑도 한 번 뜀질로 넘는다. 한여름 뙤약볕이 따가워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한다. 가을에, 겨울에 사라져 버릴 제 운명은 전혀 모른다.

 

나는 염소를 이십 년 전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나의 삶도 돌아보며 넋두리를 보탠다. 부모가 주어서 내가 온 자리로 길들여진 자리 있었고, 사회와 나라가 길들여 스스로 힘들어하던 길도 있었고, 스스로 억지 부리며 걷던 벗어나고 싶은 삶도 있었다. 그러다 홀로 찾은 외진 곳이 산골이었다. 내 딸과 아들에게 미안하다. 수풀 무성한 산골에서 태어나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산열매 따 먹고 눈사람 만들고 자랐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기숙사로 떠난,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서 어쩌지 못하는 내가 나의 옛 모습을 보는 것처럼 너희에게 미안했다.

 

흑염소_110904양산매곡리_천성광.jpg

 

겨울에 태어나 동상으로 발목 한쪽을 잃은 녀석 있다. 발목이 썩어 달랑거릴 때, 손으로 떼어내고 피부약 한 번 뿌려주었다. 또래에 비해 작아서 뒷다리 하나 헛발질하며 걸어서 내 눈길 자주 당겼다. “아픈 척 하지 마라.” 먹이통 밑에 숨어있는 녀석을 문 밖으로 던진다. 날들 보태며 몸집은 작아도 땅땅해진다. 아마도 무리 따라 드나들며 살아남을 것이다. ‘네 삶 길 네가 열어낼 게다’ 하며 이생을 잘 견디길 바라고 또 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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