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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020.11.11 21:00

나만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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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럴까?

 

 

글 홍정욱/공동대표   

 

 

 

졸업 업무에 허둥대다 안개 낀 창밖을 본다. 학교를 옮겨야 하는 해라 이런 저런 생각이 많다. 특히 올해는 더하다.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사는 일이나 학교생활이 절반을 넘고 있다는 절박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절반! 살아온 만큼 살 일이 남았다.

 

일곱 살 때부터 학교만 다녔다. 소심하고 재주 없는 탓에 가는 곳마다 개밥에 도토리 비슷한, 영판 어중개비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때때로 눈 감고 무시하면 어지간히 삐댈만하다 싶었는데 올핸 영 힘이 빠진다. 새로운 학교에 가는 마음에도 도통 설렘이 없다. 몇 년 전부터 부쩍 심하게 느껴진다.

 

부임 첫날부터 썩 달갑잖은 인물로 취급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새로 만날 동료나 선후배 선생님들과의 사귐도 무척 힘들다.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살아오면서 같은 걸 보는 눈길이 많이 달라져 엉거주춤 하기만 하는 꼴이 떠올라 숨이 길어진다.

 

나이를 먹고 살아온 일들이 등짝에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이제야 알기 시작하나 보다. 좀 더 야무지게 살 걸! 그래도 꿈이야 꿀 수 있겠지! 옮기는 학교가 이랬으면 좋겠다.

 

운동장에 햇살이 가득 비치는 시간이 길게 학교가 자리했으면 좋겠다. 4학년쯤의 아이들이 조잘거리는 소리와 운동장에 내려앉는 햇살은 참 잘 어울린다. 환히 웃으면 잇몸이나 혀까지 발갛게 보인다. 참 예쁘다.

 

운동장 기슭엔 큰 나무가 두어 그루 있고 화단도 좀 넓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 나무 밑에 아이들과 누우면, 하늘이 풍선처럼 불렀다 꺼졌다 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낙엽을 모아 던지며 놀아도 좋고, 태워 냄새를 맡아도 좋고, 맨발로 밟아도 좋을 것이다.

 

작은 풀, 큰 풀이 어울려 자라는 화단도 좀 넓었으면 좋겠다. 아침에는 잎마다 이슬이 조롱조롱 열 텐데! 터를 잡고 고추나 상추나 감자를 심어 두면 내내 설렐 텐데! 운동장 구석엔 교실 반만큼이라도 웅덩이가 하나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풀벌레와 물벌레가 어울릴 텐데. 잠자리가 하늘로 오르는 모습도 볼 텐데. 미꾸라지나 붕어도 키워 볼 텐데. 바지 걷고 들어가 찰방거리며 볼에 진흙도 발라 볼 텐데. 빗방울이 만드는 동그라미도 세어 볼 텐데.

 

운동장 구석에는 두어 놈이 올라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고 서른 명쯤이 둘러앉을 수 있는 잔디밭이 있으면 좋겠다. 키 작은 나무 울타리가 있으면 더 좋겠다. 학교가 마을이 되고, 마을이 학교가 될 텐데.

 

교실공부를 마쳐도 교실에서 얼쩡거리는 놈이 대 여섯 있으면 좋겠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라도 나누다 보면 서로 마음에 숨긴 것들이 비치기도 할 텐데. 운동장엔 공을 차다 어둠을 묻혀 황급히 달아나는 놈들의 꽁무니가 종종 보였으면 좋겠다. 길어진 제 그림자를 차곡차곡 밟아보는 재미를 알 수 있을 텐데.

 

일주일에 두어 번 퇴근길에 들러볼 만 한 선배나 후배가 한 분쯤 있으면 좋겠다. 말간 소주잔 속에 공부도 나누고, 애들 흉도, 세상 흉도 보면 좋겠다. 서로 살갑게 꾸지람도 해 주면 더욱 좋겠다.

 

전체 모임이 기다려지는 교무실이면 좋겠다. 이렇게 저렇게 학교를 꾸려 가자고 너나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다가도 훌훌 털고 막걸리 한 잔씩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날 텐데.

 

좋은 게 좋다고 어물쩍 넘어가는 전체 모임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는 동료도 몇 분쯤 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갈라질 때 저녁 누고 오줌이라도 먹고 하자며 흰소리하는 선생님도 한 분쯤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렇게 하면 되잖느냐고? 그러면 학교가 좀 더 가고 싶은 곳이 되겠냐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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