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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1 20:57

흑염소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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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염소 일대기

 

 

글 : 손종세/농민, 시인   

 

 

 

 

염소 (이야기 시작)

 

털빛이 하얀 녀석은

 

따뜻한 나라에 살지요

 

까만 녀석은

 

추운 나라에 잘 살겠지요

 

넓고 푸른 초지엔

 

하얀 양

 

숲 속 바위 위엔

 

까만 염소가 살지요

 

 

 

우리 축사엔 까만 염소

 

흑염소

 

이백여 마리 우글대지요

 

복잡한

 

쇠와 나무 구조물 안에서

 

함께 살지요

 

 

 

푸르고 넓은 초지는

 

다른 큰 나라에 있구요

 

깡으로 깡다구로

 

사는 자리는

 

인연으로 함께 사는

 

거리와 자리일꺼지요

 

 

 

 

 

흑염소 1 (출생)

 

빌어봅니다 새벽

 

양수가 얼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다리 동상 걸리지 않아

 

초유라도 먹게 해 주십시오

 

동장군께 빕니다

 

설날 연휴가 오면

 

더 더욱 간절하게 두 손 모아

 

 

 

봄 여름 가을

 

약하게 태어나

 

젖줄이 짧아

 

빨리 가는 이 없게 해 주십시오

 

 

 

현실에 빌어봅니다

 

 

 

흑염소 2 (포유)

 

첫 번째 출산

 

새낄 낳았는가

 

멀뚱이며

 

양수 핥는 것도 못하는

 

어미 그런 어미 있고

 

진통이 뭔지도 모르는

 

으앙으앙 우는 지 새끼 따라

 

새 방에 들었다

 

퉁퉁 불은 젖 빨리는 쾌감

 

육 개월에 한 번씩 낳아 보내던 배 아픈 산물

 

지 새끼 알아보는 나이 든 어미

 

불어나는 양 만큼

 

다 비우고도 더 주려

 

엉치 낮추고 기다린다

 

어쩌다 젖꼭지가 아파도

 

물리고 빨리는 즐거움에

 

 

 

흑염소 3 (이유)

 

태어났다는 것

 

젖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

 

엄마가 넘지 못하는 울타리를

 

넘나 들 수 있다는 것

 

 

 

배가 허전하다

 

사료는 달고 지푸라기는 억세다

 

하루 종일 배 채우는 입질을 해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단 것은 적고 억샌 것도 넉넉잖다

 

 

 

태어난 지 2개월 3개월까지다

 

엄마 젖 먹고 싶다

 

엄마 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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