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 일대기
글 : 손종세/농민, 시인
염소 (이야기 시작)
털빛이 하얀 녀석은
따뜻한 나라에 살지요
까만 녀석은
추운 나라에 잘 살겠지요
넓고 푸른 초지엔
하얀 양
숲 속 바위 위엔
까만 염소가 살지요
우리 축사엔 까만 염소
흑염소
이백여 마리 우글대지요
복잡한
쇠와 나무 구조물 안에서
함께 살지요
푸르고 넓은 초지는
다른 큰 나라에 있구요
깡으로 깡다구로
사는 자리는
인연으로 함께 사는
거리와 자리일꺼지요
흑염소 1 (출생)
빌어봅니다 새벽
양수가 얼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다리 동상 걸리지 않아
초유라도 먹게 해 주십시오
동장군께 빕니다
설날 연휴가 오면
더 더욱 간절하게 두 손 모아
봄 여름 가을
약하게 태어나
젖줄이 짧아
빨리 가는 이 없게 해 주십시오
현실에 빌어봅니다
흑염소 2 (포유)
첫 번째 출산
새낄 낳았는가
멀뚱이며
양수 핥는 것도 못하는
어미 그런 어미 있고
진통이 뭔지도 모르는
으앙으앙 우는 지 새끼 따라
새 방에 들었다
퉁퉁 불은 젖 빨리는 쾌감
육 개월에 한 번씩 낳아 보내던 배 아픈 산물
지 새끼 알아보는 나이 든 어미
불어나는 양 만큼
다 비우고도 더 주려
엉치 낮추고 기다린다
어쩌다 젖꼭지가 아파도
물리고 빨리는 즐거움에
흑염소 3 (이유)
태어났다는 것
젖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
엄마가 넘지 못하는 울타리를
넘나 들 수 있다는 것
배가 허전하다
사료는 달고 지푸라기는 억세다
하루 종일 배 채우는 입질을 해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단 것은 적고 억샌 것도 넉넉잖다
태어난 지 2개월 3개월까지다
엄마 젖 먹고 싶다
엄마 곁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