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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마당, 그 자유터에서 생긴 일

 

 

홍정욱/운영위원장

 

 

배꼽마당은 배꼽 같아서 배꼽마당이다.

 

배꼽이 몸 가운데 있듯이 배꼽마당은 도리도리 모여 앉은 집들의 가운데쯤에 자리하여 밤낮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땅주인이야 분명 있지만 내 땅이다 주장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냥 우리들의 배꼽마당이었다.

 

교실 서너 칸 정도 넓이가 되는 배꼽마당이 우리 집 앞에 있었다. 둘레에 인제네, 대인이네, 성호네, 태구네가 있었고 쉰 걸음 쯤 떨어진 곳에 기도네, 대희네, 수대네, 태진네가 모여 있었다. 부잣집의 바깥마당이 말바꿈하여 배꼽마당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에겐 절대로 바깥마당일 수 없는 공간이었다.

 

태내에서 배꼽을 통해 엄마와 연결되고 숨을 이어갔듯이 어릴 적 대부분의 일들은 배꼽마당에서 일어났다. 공깃돌, 진잡이, 비석치기, 다망구, 자치기, 연날리기, 씨름, 공차기 등의 놀이도 놀이지만 학교에 가기 위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이는 ‘애향단’의 집합 장소였고, 비닐 축구공이 걸린 마을 대항 퇴비 증산 대회에 보낼 풀 더미를 임시로 쌓아 두는 곳이기도 했다. 집에 두긴 불안한 자기만의 귀중품을 숨겨두는 곳이기도 하고, 학교에 들고 가서 검사받아야 했던 쥐꼬리의 갯수를 서로 조정하거나, 밤에 서리할 밭이나 집을 정하는 등의 비밀 담합 장소이기도 했다. 꿈도 욕심도 거기서 컸다.

 

하나, 엿을 훔치다.

 

단맛이 참 귀했다. 사카린을 탄 물에 국수를 말아 먹거나, 오이냉국을 만들어 먹는 게 여름철의 별미였다. 강냉이나 감자를 찔 때도 엄마가 기분이 좋으면 사카린을 넣어 주기도 했다. 엄마는 사카린을 약첩처럼 종이에 싸서 정짓간 어딘가에 숨겨 두고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니 며칠에 한 번씩 지게를 지거나 손수레를 끌고 나타나는 엿장수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쟁강 쟁강 울리면 온통 관심이 그쪽으로만 쏠렸다. 가위 소리만 듣고도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약속이 없어도 엿장수가 오는 날은 대부분의 동무들이 배꼽마당에 모였다.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큼의 맛보기를 맛보고 나면 고물을 찾기 위해 온 동네로 흩어졌다.

 

고무신이나 헌책, 쇠붙이, 빈 병, 비닐, 등 어지간한 건 다 엿으로 바꿀 수 있었다. 누가 해당되는 뭐라도 하나 구해 나타나면 모두가 엿장수를 에워쌌다. 엿을 좀 더 달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런데 엿장수가 떼어내는 엿의 크기는 그야말로 엿장수 맘대로라서 대중이 없었다. 고무신 한 짝에 해당하는 양이 엿장수마다 달랐고, 날마다 달랐다. 어찌하여 한 뼘쯤의 엿을 입에 물면 그 단물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하도 엿장수를 따라다녀 “엿장사를 니 에미 애비해라” 란 말을 자주 들었다.

 

6학년쯤이었나?

 

겨울인데 아침나절에 나무 한 짐을 해 놓고 배꼽마당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부름고개 밑에서 수레를 끈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쟁강거리기 시작했다. 칡뿌리를 씹고 있던 또래 두 놈과 눈이 마주쳤다. 셋이서 아랫집 흙담장을 덮어 놓은 비닐 포대를 벗겨 엿 바꿔 먹고 혼쭐이 난 지 며칠 지난 뒤였다.

 

“우리, 오늘은 한 번 진짜로 한 번 해 묵자!”

 

한 놈이 결의에 찬 소리로 말했다.

 

“잡히모 우짜노?” 겁쟁이 나.

 

“그라모 니는 엿장사를 너거 집으로 끌고 가라. 고물 있는 거 매로 꼬시 가이꼬” 걱정해주는 옆집 놈.

 

“아이다. 내가 우리 집으로 꼬시 가께. 일단 너그 둘이는 엿을 많이 숨카라. 일단 숨카모 지 맘대로 아무 데로나 달라빼서 작은 천제봉 밑에 있는 꿀밤나무 밑에 모이기다. 먼저 묵기 없고 똑같이 갈라묵기다. 알았제?”결의에 찬 놈이 결단했다.

 

역할 분담과 분배에 대한 합의도 마치고 엿장수를 기다렸다. 다행히 나이가 좀 들어 보였다.

 

결의에 찬 놈이 능글맞은 내게 눈짓을 하더니 엿장수를 유인했다.

 

“우리 집 헛간에 고물이 좀 있는데 가 볼랍니꺼?”

 

“아! 그거! 팔아묵을라꼬? 그건 엿 많이 주낀데. 비누 바까라”

 

한 술 더 뜬 옆의 놈. 손발이 척척 맞다. 나는 갑자기 오줌이 누고 싶었지만 참았다. 엿장수가 놈을 따라가자 남은 둘은 우리 집에도 고물이 있나 가보자며 집으로 가는 척했다.

 

드디어 엿장수가 꼬신 놈의 집 헛간으로 들어서자 우리 둘은 잽싸게 뛰어나와 가락엿을 한 웅큼씩 쥐곤 내달렸다.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했지만 대밭 속을 빠져나와 천제봉 아래로 숨어들었다. 꿀밤나무에 붙어 한참을 기다리자 한 놈이 나타났고 좀 있다가 결의에 찬 놈이 나타났다. 은밀한 목소리!

 

“우찌 됐노?”

 

“다 둘러보고 아부지한테 안 물어 봤다카이 고마 가더라”

 

“모르더나?”

 

“엿장사가 술 묵었는갑더라!”

 

그제야 손에 쥔 엿을 나누기 시작했다. 엿이 본래보다 길어졌고 짠맛이 조금 느껴졌지만, 한없이 달았다.

 

그 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그런 작당에서 빠졌고 동무들은 짝을 바꿔 몇 번 더 해 먹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 혼자 한 번 한 적이 있다. 그땐 엿이 아니라 ‘어깨동무’란 잡지였다. 엿장수가 어느 집에 들어간 사이 리어카에 실려 있던 책을 들고 토껴버렸다. 수십 번을 읽고 딱지를 만들었다가 나중엔 또 엿으로 바꾸어 먹었다. 알록달록한 활자도 엿만큼이나 유혹적이었다.

 

요샌 뭐든 너무 달다. 사과도, 배도, 복숭아도, 포도도, 수박도, 자두도 제 맛은 없고 달기만 달다. 혓바닥을 한 쪽으로만 훈련시킨 돈의 힘이다. 그래도 그때 엿만 할까? 적어도 내겐 ‘엿 같은 세상!’ 이라거나 ‘엿 먹어라!’ 등은 욕이 아니다. 그때 기억들이 적어도 세상살이에서 조금은 나를 지켜 주는 것 같다. 남들보다 두어 가지 욕을 덜 듣고 살 수 있게 말이다.

 

둘, 오줌보 축구

 

동네에 큰일이 있어 돼지를 잡는 날은 배꼽마당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들썩였다. 엄마들은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아버지들은 슥슥 칼을 갈거나 소불알저울을 챙겼다. 나이 든 어른들은 소주병을 들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꽥꽥 소리를 지르며 돼지가 끌려 나오면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쫓았다. 동네마다 ‘돼지 멱을 따는 어른’이 한 사람쯤은 있었다.

 

꽥!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리고 나면 엄마들이 바빴다. 더운 물을 널브러진 돼지 몸에 끼얹고 피를 받은 그릇을 들고 들락거렸다. 김이 술술 나는 돼지 몸통을 가운데 두고 모여들어 털을 뜯었다. 털이 빠져 흰 몸통이 드러나면 칼잡이 어른이 몸통을 갈랐다. 김이 나는 속엣것들이 쏟아지면 아버지들은 벌건 간을 드러내어 소금장에 찍어 소주를 마셨다. 골라 낸 창자를 손질을 위해 도랑으로 옮기면 조그만 물고기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부위별로 그릇에 담겨 엄마들에게 옮겨지면 곧 고소한 냄새가 났다. 내장 중 일부를 안줏거리로 장만하는 것이었다. 어쩌다 한 점 얻어먹는 재미도 있었지만 우리들의 목적은 딴 데 있었다.

 

“여깄다! 이놈들, 저리 가서 놀아라! 먼지 난다.”

 

벌건 오줌보가 배꼽마당 아래 빈 논으로 던져지면 우리는 짚으로 핏물을 대충 닦았다. 대꼬챙이를 꽂아 바람을 불어 넣고 실로 묶고 나면 신 나는 축구놀이가 펼쳐졌다. 짚단으로 골대를 만들고 논두렁이 운동장의 경계가 되었다. 벼를 벤 그루터기가 발바닥을 찌르기도 했지만, 그 정도쯤이야!

 

풀린 올이 발가락에 걸려 앞으로 찬 공이 제 얼굴을 때리기도 하는 짚공을 차는 느낌과는 너무 달랐다. 차는 순간 발등에 착 달라붙는 촉촉하고 차가운 느낌이 유별났다. 제대로 둥글지 못한 모양이라 튀는 방향도 제멋대로인데 어쩌다 공이 얼굴에 맞기라고 하면 축축하고 구릿하고 비릿한 느낌이 한참이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딴 데 있었다. 동네 개들이 공을 노리고 있다는 것!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논두렁을 따라 뛰어다니던 개들이 공이 논두렁 밖으로 나가면 냅다 물고 제 길로 줄행랑을 쳐 버리는 것이었다. 쫓아 가보지만 여러 마리가 달려들어 물고 흔들어 버리면 우리의 가죽공은 쪼가리가 나고 말았다. 한입씩 베어 물고 도망가는 개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다 불콰한 어른들의 이죽거리는 소리에 입맛만 다셨다.

 

“개가 단독 드리블하는 기가 이차만이보다 낫다.”

 

“차범근이보다도 더 날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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